자기관리가 완벽에 가까울 줄 알았던 세종대왕의 특이한 기록들이 흥미롭습니다.

우리가 몰랐던  세종대왕의 숨겨진 진실들을 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.

1.육식주의자

태종이 집권할 당시,나라에 큰 일이 있어 모두 고기를 먹지 않는 기간이 있었습니다.

그렇지만 충년대군(훗날 세종) 은 예외였는데 그 이유는 바로'고기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.

태종이 임종하기 전 유언으로 '세종에게 고기를 잘 먹여라'라고 남겼을 정도라고 합니다.그 부분에 있어서는 아버지도 포기한 셈입니다.

2.출산휴가 정책

세종은 태어날 아이와 산모에게 해가 될까 봐 정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.

"노비는 비록 천민이지만(이들 또한)하늘이 낳은 백성이다."

3.독서광=당뇨병

세종은 유년시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사냥 등 신체활동보다 글 읽기에 몰두했습니다.

책을 많이 읽다보니"시력장애"가 생긴것입니다. 재위32년 20년 동안 시각장애를 느꼈고,정사를 살피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고 합니다.

눈이 흐릿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는 걷기 힘들었고, 거의 앞을 못 보았다고 전해집니다.

독서광인데다가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 발생해 시력이 상실되었다고 추측되고 있습니다.

4.신하들에겐 가혹했던 왕

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대왕의 이미지는 인자하고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왕입니다. 신하들에게도 그랬을까요? 전혀 아니었습니다.

훈민정음이 창제할 때 최만리, 정찬손 등 학자들이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적이 있는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.

"너희들은 설총이 만든 이두 글자는 옳다 하면서 임금인 내가 하는건 옳지 않다고 하는거냐? 너희들이 운서를 아느냐. 사성칠음에 자모가 몇인지 아느냐.

내가 저 운서를 바로 잡지 않는다면 누가 대신하겠느냐? 라고 말한 뒤 반대 상소를 올린 학자들을 의금부에 가뒀다고 합니다.

세종은 독서광이었던 터라 토론의 달인이었습니다. 방대한 지식과 논리적인 화술로 신하들을 꼼짝 못하게 했고 정책 회의 할 때도 준비 안 해온 신하들을 하나하나 꾸짖었습니다.

또,황희정승이 편하게 지내고 싶어 은퇴하려고 했지만 무려 22년 동안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. 백성들에게는 인자한 왕이었지만, 신하들에게는 아주 엄격한 왕이었던 것입니다.

5.음악과 춤을 사랑했던 왕

사실,세종이 처음부터 세자로 책봉된 것이 아니었습니다.

그에게는 10살 때 세자로 책봉된 형 양녕대군이 있었습니다. 그래서 태종은 세종에게 "너는 세자가 아니어서 따로 할일이 없으니 편안히 즐기기나 하여라"라며 여러 악기를 하게 하였습니다.

이때부터 세종은 거문고와 가야금을 연습했고 형을 가르쳐 줄 수준 정도로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.

우리 고유의 악보(정관보)를 제작할 만큼 음악을 사랑했던 왕입니다.세종은 춤 실력도 정말 뛰어났다고 합니다.

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"상왕(태종)이 임슴(세종)과 더불어 노상왕전에서 잔치를 베풀어 두 임금이 서로 붙잡고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."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.

6. 18남4녀=능력자+진정한 사랑꾼

정사를 돌보느라 가정에는 충실하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사실, 세종대왕은 조선 왕조 역사상 아들을 가장 많이 낳은 왕이었습니다.

세종대왕은 소헌왕후 사이에서 8남 2녀를 낳았고 금술이 좋아 후궁을 들이는 것도 매우 늦었다고 합니다.

첫 후궁도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로 들인 것이었고 소헌왕후가 사망했을 때 그녀의 넋을 기리기 위해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수양대군을 시켜 불경 관련 책을 하나 짓도록 시키기도 했습니다.

조선이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했던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부인을 사랑했는지 잘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.

세종대왕은 정비 소헌왕후를 비롯해 6명의 부인에게서 18남 4녀를 두었습니다.

<출처:유투브=역사냉장고>